래루에게
래루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저번에 말했던 프리랜서 일은 잘 해결됐는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너의 생각이 많이 나는 밤이야.
요즘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가 않거든. 사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도 맞고, 모두 내 선택인 것도 맞는데 하루가 해야할 일로 시작하고 온통 해야할 것들을 하다가 잠 때를 맞추려고 자야 하는 매일을 살다보면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
취미도 꼭 시간을 내서 하게 되니까 음... 바쁜 일상에 억지로 취미를 넣어주는 것만 같아서 안 하게 돼.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너랑 놀 때면 항상 아무 계획도 없이 만나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보냈잖아. 그 시간은 그때도 참 소중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소중하게 느껴져. 무엇을 했는지 보다도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게 오늘까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아.
나는 이런 생각이 들면 내 안에 있는 내 자리를 사회에 임대한 기분이 들어. 사회가 안에서 살고 있는 거지. 그냥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너는 어떠니. 래름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전에 어떤 블로그에서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것이 없어진다고 읽었는데 그게 문득문득 걱정돼. 지금도 그런 것만 같은데 더 나이가 들면 내 생각이 멈춰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요즘 아무렴 다 괜찮은 사람이거든. 취향도 호불호도 요즘엔 어떤 게 내 것인지 가늠이 잘 안 돼.
요즘 내가 가장 스스로 낯선 모습이 뭔지 알아? 더 먹기 싫은 반찬을 억지로 먹는 거야. 그릇을 다 비울라고.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내가 해야할 것, 혹은 사회적으로 더 효율적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기 위해 나의 좋고 싫음을 밀어낸 채 사는 것 같다고 느껴.
나는 최근까지 소중한 것들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어. 모두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거기에 나다운 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그래서 내 전부를 임대해버린 사람처럼 느끼게 됐나 봐. 그러면서도 나에게 할애할 시간이 있을까, 고민스러운 걸 보면 스스로 조급한 마음이 드나 봐. 얼른 취업을 해서 자리를 잡고 싶고, 능력을 쌓고 싶고, 한구석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매일 생각해.
그래도 이렇게 편지를 쓰니까 기분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이라 즐거워. 조금 더 안정되면, 돈을 벌면 이렇게 넘기다가 아직도 네가 사는 런던에 한 번을 못 간 게 미안하고 속상해. 할수만 있다면 1년은 살다 오고 싶다. 보고 싶은 래루.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지낸단다. 그냥 너에게 내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어.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말이 오늘처럼 와닿는 날이 없었는데, 우리 정말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 오늘은 내가 런던의 구름을 돌봐줄게. 행복한 일이 있는 하루가 될 거야.